④ 형제단들로부터
⑤ 수공업자들과 농민들이 낸 헌물에서
⑥ 빈민구제함과 헌금함에 있는 음식물과 돈에서
⑦ 건강한 날들에 대한 감사 헌금과 유언을 통해 언급된 헌금에서
(2) 라이스니히 헌물이 사용되는 곳
라이스니히의 헌물이 사용되는 범위는 라이스니히 교구에 한정되어 있음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랑이라는 관점에서 몇가지 예외적인 조항도 있다. 루터는 이 헌물이 사용되어야 할 곳들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① 목사를 위해서-연봉과 일년에 네차례의 보조금.
② 교회의 사찰을 위해서-연봉과 일년에 네차례의 보조금.
③ 학교를 위해서-교사들의 사례비-연봉과 일년에 네차례의 보조금.
④ 장애자, 병든자와 가난한 사람들, 병과 노년으로 일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열명의 위원들이 매 주일 또는 부정기적으로 위와 같은 어려운 사람들 을 돌본다(이들이 살 수 있는 집, 옷, 먹을 것). 이렇게 함으로써 구걸행위를 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⑤ 버려진 고아와 가난한 어린이들을 위해서-이들의 교육과 생계를 돌보아야 한 다.
⑥ 구걸 못하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⑦ 나그네들을 위해서
⑧ 교회당, 다리, 목사관, 학교, 사찰 사택, 구빈원의 건축과 유지
⑨ 비축할 수 있는 곡식을 사들이기 위해
(3) 라이스니히 헌물에 있어서 행정적인 사항들
루터는 이 헌물을 지급하기 위해서 10명으로 구성되는 위원회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 위원들은 두명의 귀족, 두명의 시의원, 일반 시민들 가운데 세명은 도시민 그리고 세명은 농민으로 이루어졌다. 루터는 이들이 선한 그리스도인의 양심으로 일해줄 것과 사사로운 것들에 얽매이지 말아야 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이들은 매주 목사관이나 시청에 모여서 그들에게 위임된 일들을 성실히 수행하고 토의와 협의를 해야 한다. 10명의 위원들은 일년에 네번(사순절 첫째주일 다음의 수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성령강림절, 9월 14일, 12월 13일)에 걸쳐 헌물의 수익상황을 점검하고 부족함이 없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루터는 라이스니히 헌물함의 규정을 통하여 교회 재산의 사회적 기여도를 심도있게 다루었다. 그는 철저히 사유재산제도를 인정하는 사람이지만 그의 이상은 초대 교회의 재산의 공동분배에 있었다. 그는 사도행전 2:44과 4:32과 유대에 있는 가난한 성도들을 돕는 헌금에 대해 언급한 고린도후서 9:2을 교회 재산의 사용에 있어서 이상으로 보고 있다. 마태복음 25장 35-46절에서 그리스도께서 최후심판 날에 말씀하신 것과 같이 루터는 궁핍한 사람들을 돕고 그들을 섬기는 기독교적인 사랑보다 더 큰 예배는 없다고 말한다.
VI. 결론
십일조는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에게 주신 아름다운 사명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교인들이 교회에 십일조를 바쳐야 하는가와 온전한 십일조를 바친다고 양심있게 말할 수 있는가의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이제까지 살펴본 것을 바탕으로 몇 가지 제안을 하려고 한다.
첫째, 교회의 회계는 투명해야 한다. 모든 교인들이 낸 헌금이 어디에 사용되었는지를 단 한푼까지 정확하게 공개되어야 한다. 이것은 교회를 해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건강하게 한다. 이렇게 된다면 신자들이 헌금을 더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께 바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교회는 십일조를 바치라고 신자들에게 가르치지만 말고 교회 스스로 십일조를 바쳐야 한다. 이 교회의 십일조는 교회 경상비에서 10분의 1을 자신의 교회를 위한 일이 아닌 곳에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 이 교회의 십일조는 십일조를 받은 레위인이 십일조를 하나님께 내는 것과 연관시켜 볼 수도 있다. 가난한 교회라고 예외일 수 없다. 가난한 신자에게 십일조는 면제가 되는 것인가? 교회의 경상비의 10분의 1에서 모아진 교회의 십일조는 무엇보다도 먼저 구제용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이 십일조는 개교회가 연합한다는지 지방회 또는 노회별로 연합한다든지 아니면 총회적인 사업으로 발전하면 좋으리라 생각한다. 이 십일조를 총회적으로 모은다면 한국의 개신교회도 독일 루터교회들이 하는 사회봉사국(Diakoniewerk)을 설립하여 대대적인 사회 복지사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헌금이 꼭 필요한 일에 사용되도록 해야 한다. 가장 우선적인 일은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나는 일이다. 그러나 오늘 한국의 교회는 과거의 습성에 젖어 필요하지 않는 일에 재정을 낭비하는 경우가 많다. 그 한 예로 매주마다 한번보고 버려지는 주보의 발행을 들 수 있다. 과연 주보를 계속 발행해야할지 우리는 한번 물어보아야 할 것이다. 주보를 매주 발행하는 것 대신 그날 부를 찬송과 성경말씀을 교회의 벽이나 앞면에서 알려주면 될 것이다. 그리고 매주 마다 바꾸는 강단의 꽃꽂이이다. 꼭 비싼 생화를 해야만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그 경비가 소외되고 그늘진 이웃들에게 전해진다면 그곳에 그리스도의 향기가 퍼지지 않을까? 이런 일을 할 때에 무엇보다도 주의해야 할 일은 교회나 어떤 목사 또는 장로의 이름으로 하지 말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해야 한다(골 3:17)는 것이 성경의 원리이다.
넷째, 십일조와 헌금은 신자의 소유의 일부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겨준 것의 십분의 일 또는 그 이외의 것을 드리는 것이다. 기독교인의 경제관은 물질이 그의 소유가 아니라 단지 위임받은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이렇게 될 때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더욱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독점이 아닌 공유이며 나눔이다. 십분의 일이라는 나눔의 훈련을 통하여 십분의 일 이상을 나눌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교회 안에서만이 아닌 세상을 향해서 전파해야할 복음이다. 십일조의 정신은 사랑이기 때문이다. 서구의 교회가 진정으로 십일조를 한다면 세계의 굶주림의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서구 교회 대부분의 교인들은 십일조에 난색을 표한다. 십일조와 헌금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은 물론 제의적인 행위이다. 그러나 이것을 통해 하나님은 구체적인 사랑과 정의의 실현을 가르치신다. 문제는 이것을 교회가 어떻게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사용하느냐에 달려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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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단행본 및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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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18:21) 내가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레위 자손에게 기업으로 다 주어서 그들의 하는 일 곧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나니
(민 18:24)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십일조를 레위인에게 기업으로 준 고로 내가 그들에 대하여 말하기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기업이 없을 것이라 하였노라
(민 18:26) 너는 레위인에게 고하여 그에게 이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취하여 너희에게 기업으로 준 십일조를 너희가 그들에게서 취할 때에 그 십일조의 십일조를 거제로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
(민 18:28)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받는 모든 것의 십일조 중에서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고 여호와께 드린 그 거제물은 제사장 아론에게로 돌리되
(신 12:6) 너희 번제와 너희 희생과 너희의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와 너희 서원제와 낙헌 예물과 너희 우양의 처음 낳은 것들을 너희는 그리로 가져다가 드리고
(신 12:11)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한 곳을 택하실 그 곳으로 나의 명하는 것을 모두 가지고 갈지니 곧 너희 번제와 너희 희생과 너희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와 너희가 여호와께 서원하는 모든 아름다운 서원물을 가져가고
(신 12:17) 너는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와 네 우양의 처음 낳은 것과 너의 서원을 갚는 예물과 너의 낙헌 예물과 네 손의 거제물은 너의 각 성에서 먹지 말고
(신 14:22) 너는 마땅히 매년에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
(신 14:23)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곧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먹으며 또 네 우양의 처음 난 것을 먹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
(신 26:12) 제 삼 년 곧 십일조를 드리는 해에 네 모든 소산의 십일조 다 내기를 마친 후에 그것을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어서 네 성문 안에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삼상 8:15) 그가 또 너희 곡식과 포도원 소산의 십일조를 취하여 자기 관리와 신하에게 줄 것이며
(대하 31:5) 왕의 명령이 내리자 곧 이스라엘 자손이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과 꿀과 밭의 모든 소산의 처음 것을 풍성히 드렸고 또 모든 것의 십일조를 많이 가져왔으며
(대하 31:6) 유다 여러 성읍에 거한 이스라엘과 유다 자손도 소와 양의 십일조를 가져왔고 또 그 하나님 여호와께 구별하여 드릴 성물의 십일조를 가져왔으며 그것을 쌓아 더미를 이루었는데
(대하 31:12) 성심으로 그 예물과 십일조와 구별한 물건을 갖다 두고 레위 사람 고나냐는 그 일을 주관하고 그 아우 시므이는 버금이 되며
(느 10:37) 또 처음 익은 밀의 가루와 거제물과 각종 과목의 열매와 새 포도주와 기름을 제사장들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하나님의 전 골방에 두고 또 우리 물산의 십일조를 레위 사람들에게 주리라 하였나니 이 레위 사람들은 우리의 모든 성읍에서 물산의 십일조를 받는 자임이며
(느 10:38) 레위 사람들이 십일조를 받을 때에는 아론의 자손 제사장 하나가 함께 있을 것이요 레위 사람들은 그 십일조의 십분 일을 가져다가 우리 하나님의 전 골방 곧 곳간에 두되
(느 12:44) 그 날에 사람을 세워 곳간을 맡기고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에게 돌릴 것 곧 율법에 정한 대로 거제물과 처음 익은 것과 십일조를 모든 성읍 밭에서 거두어 이 곳간에 쌓게 하였노니 이는 유다 사람이 섬기는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을 인하여 즐거워함을 인함이라
(느 13:5) 도비야를 위하여 한 큰 방을 갖추었으니 그 방은 원래 소제물과 유향과 기명과 또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에게 십일조로 주는 곡물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또 제사장들에게 주는 거제물을 두는 곳이라
(느 13:12) 이에 온 유다가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가져다가 곳간에 들이므로
(암 4:4) 너희는 벧엘에 가서 범죄하며 길갈에 가서 죄를 더하며 아침마다 너희 희생을, 삼 일마다 너희 십일조를 드리며
(말 3:8)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말 3: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마 23: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눅 11:42)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를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아니하여야 할지니라
(눅 18: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느 11:1) 백성의 두목들은 예루살렘에 머물렀고 그 남은 백성은 제비뽑아 십분의 일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 와서 거하게 하고 그 구분은 다른 성읍에 거하게 하였으며
(사 6:13)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오히려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삼키운 바 될 것이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히 7:2) 아브라함이 일체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눠 주니라 그 이름을 번역한즉 첫째 의의 왕이요 또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히 7:4) 이 사람의 어떻게 높은 것을 생각하라 조상 아브라함이 노략물 중 좋은 것으로 십분의 일을 저에게 주었느니라
(히 7:5) 레위의 아들들 가운데 제사장의 직분을 받는 자들이 율법을 좇아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난 자라도 자기 형제인 백성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라는 명령을 가졌으나
(히 7:6) 레위 족보에 들지 아니한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고 그 약속 얻은 자를 위하여 복을 빌었나니
(히 7:8) 또 여기는 죽을 자들이 십분의 일을 받으나 저기는 산다고 증거를 얻은 자가 받았느니라
(히 7:9) 또한 십분의 일을 받는 레위도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십분의 일을 바쳤다 할 수 있나니
(계 11:13) 그 시에 큰 지진이 나서 성 십분의 일이 무너지고 지진에 죽은 사람이 칠천이라 그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더라
그 밖에 더 많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