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십이레의 성경 본문연구 (다니엘 9장 24-27)
다니엘서 9장 24절부터 27절까지의 말씀을 보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주장하는대로 그말씀의 주인공이 적그리스도가 아니다. 그것은 어처구니 없게도 우리 주님자신이라는 사실에 그와같은 주장을 생각없이 펼치는 사람들을 보면 경악하지 않을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 구절별로 한절 한절 이말씀을 살펴 보기로 하자.
< 24절을 보자 >
(단 9:24)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
“네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먼저 칠십이레는 “성경과 사대제국연대기”에서 밝힌바와 같이 바사왕 아닥사스다 1세 롱지마누스가 BC 457년 3월 21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있던 날부터 AD 34년 스데반의 순교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이 이방인들에게 전파되기 시작하는 시점까지의 기간을 말하는 것으로 에스겔의 계산법으로 하루 일년씩을 계산하는 것이다.
69이레는 AD 25년을 말하며 주님이 그해 가을에 세례를 받으시고 사역을 시작하는 시점을 말한다. 그리고 반이레동안 곧 삼년반동안 제자들을 부르시고 그들과 함께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시는 사역하시고 AD 29 년 3월 18일 금요일 오후 3시에 십자가에서 죽으신다. 그리고 3월 20일 안식후 첫날에 부활하신다. 그리고 승천하시는 일은 4월 28일 또는 29일에 일어난다. 그리고 몇날이 못되어 오순절날에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이 임한다.
그러므로 칠십이레의 종점을 AD 34년으로 보는 것이다.
이와같은 사실에 근거하여 다음말씀을 살펴보자.
“허물이 마치며”
허물이 마친다는 말은 인간의 죄문제를 끝낸다는 말이다.
“to finish the transgression”-KJV
주님이 십자가에서 선언하신 말씀을 생각해 보자.
(요 19: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죄가 끝나며”
죄가 끝난다는 이구절을 Young,s Literal Translation of The Holy Bible 번역에 보면 “to seal up sins”라고 번역이 되어 있다. 이말은 죄가 없는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을 말한다. 죄를 이기는 생활, 죄를 용서만 받는 것이 아니라 죄가 끊어지는 생활을 사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죄악이 영속되며”
이말씀은 죄로 말미암아 원수된 하나님과의 관계가 화목됨을 말한다.
또 다른 번역들에도 화해와 속죄를 말하고 있다.
“and to make reconcilliation for iniquity”-KJV
“and to atone for iniquity”-RSV
“and put a propitiatory covering over iniquity”-Rhm(The Emphasized Bible)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의가 드러난다는 말이요 말할수 없는 은혜로 죄인을 의롭다하시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롬 3: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롬 3: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롬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롬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 3: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롬 3: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를 믿음으로 받는 하나님의 의를 말하는 것이다.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한다는 말은 하나님이 옛적에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던 이상들과 선지자들을 통해서 백성들에게 말씀하신 예언이 이루어짐을 말하는 것이다.
“또 지극히 거룩한자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
기름을 부음을 받은자는 메시야를 말하는 것에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기름부으심을 받은자로서 이땅의 죄인들의 죄를 속하시기 위해서 육신을 입고 죄인의 모양으로 오신 세상의 구주이시기 때문이다.
< 그러면 25절을 살펴보자 >
(단 9:25)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육십이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 때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거리와 해자가 이룰 것이며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하나님은 다니엘에게 깨달아 알라고 명하신다.
하나님이 말씀은 깨달아야 한다.
예언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말하고 글을 쓰는 것은 위험한 일이며 그것은 거짓말쟁이가 되는 것이요 곧바로 거짓선지자로 가는 것이다.
어떤이들은 남의 글을 읽고 베끼고하여 말씀을 전한다고 하면서 또 누구에게 배운 것으로 전한다고 하면서 하나님이 자신에게 깨닫게 하지 않은 것을 말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는 참으로 두려운 일이 아닐수가 없다.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육십이 이레가 지날 것이요”
that from the going forth of the commandment to restore and to build Jerusalem unto the Messiah the Prince shall be seven weeks, and threescore and two weeks:-KJV
앞에서 말한것과 같이 칠십이레의 시작점은 BC 457 년이다. 일곱이레와 육십이이레는 육십구이레로서 육십구이레의 마지막해가 AD 25년이며 그해에 주님이 세례를 받으시고 복음전파사역을 시작하셨다.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은 만왕의 왕으로 오신 메시야를 일컫는 말이다. King James 번역에는 ‘Messiah the Prince’라고 번역이 되어 있어 의심할 여지가 없는 말씀이다. The Modern English Bible 도 “a Prince, a Messiah”라고 번역을 했으며 예루살렘성경(The Jerusalem Bible)은 기름부으심을 받은 왕(an anointed Prince)이라고 번역을 했다.
“그 때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거리와 해자가 이룰 것이며”
이말씀은 헬라의 식민지로서 고통을 당했던 시절을 포함하여 이야기하는 것이다. 마카비의 난이 일어나고 하스몬왕조를 시작하여 독립국가로서 면모를 갖추고 일시적으로 나라가 회복되는 기간과 예루살렘에서 헤롯왕조가 시작되고 로마제국의 시대로 넘어 오는 중간시점을 말한다. ‘곤란한 동안’에는 국력도 군사력도 넉넉하지 못하고 옹색한 상황이지만이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는 말이다.
“the street shall be built again, and the wall, even in troublous times.”-KJV
거리가 조성이 되고 성벽이 다시 쌓아지고 성벽을 두루는 물구덩이 곧 해자를 만드는 일이 일어남을 말한다.
헤롯대왕은 BC 37년 곧 칠십이레중 마지막 70년이 시작되는 해에 아버지 안티파터를 대신하여 유대의 총독으로 부임한다. 그는 에돔사람으로서 유대인들에 대하여 종족적인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으며 말썽없이 유대인들을 다스리기 위하여 로마의 눈치를 보면서 유대인유화정책을 쓴다. 그유화정책중 가장 중요한 것들이 건축 사업이었다. 먼저는 예루살렘 성전에 로마병정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아준 것부터 시작해서 성곽과 요새를 수축하고 그이 재임기간에 경제적인 부흥을 가져 왔으며 문화적으로도 많은 치적을 남겼다 그래서 예루살렘에 많은 중요한 건물들을 새로 지었다. 그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그때로부터 46년동안에 지어진 예루살렘성전을 짓기 시작한 것이 유대인들이 볼 때에 가장중요한 치적이었다.
그때는 확실히 정상적인 때가 아니고 곤란한 때이었다. 이두메인인 헤롯이 유다를 다스리는 것도 그렇거니와 그를 총독으로 세운 로마의 식민지이었던 점이 다니엘에게 하나님이 “그 때 곤란한 동안에”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되는 것이다.
< 그다음은 26절을 보자 >
(단 9:26) 육십이 이레 후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훼파하려니와 그의 종말은 홍수에 엄몰됨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
“육십이 이레후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And after threescore and two weeks shall Messiah be cut off, but not for himself-KJV
육십이 이레후에 기름부은자 곧 메시야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요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말한다. 여기에는 이의가 있을 리가 없다.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를 Helen Spurrell이 번역한 A Translation of The Old Testament Scriptures From the Original Hebrew(히브리어 원본으로부터의 번역)에는 “Shall Messiah be Put to death”라고 번역이 되어 있다. 이 뜻은 "그리스도가 죽음을 당할 것이며"이다.
그리고 괄목할만한 것은 우리말 번역에는 빠진 부분이 히브리원본에는 있는 것이다.
위에 인용한 히브리어 원본에서 번역한 A Translation of The Old Testament Scripture From the Original Hebrew에서 메사야가 죽은 것이 자기자신 때문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but not for His own sake” 곧 '그를 위한 것이 아니요' 라는 이말은 곧 그의 죽음이 그를 인한 것이 아니라 이세상 죄인들을 위함이라는 말이다.
다른 번역들도 같은 문구를 넣고 있다.
“but not for Himself”-KJV
“though there is no crime in Him”-The Septuagint(셒투젠트 번역)
(히 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훼파하려니와”
이는 로마제국의 잔혹사를 미리 예언한 것으로서 예루살렘의 멸망을 가리키고 있다. 그것은 AD 70년에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예루살렘 성전이 불에 타는 거룩한 도성의 최후를 진술하고 있는 것이다.
성읍은 예루살렘을 말하는 것이요 성소는 예루살렘 성전을 말한다.
AD 69년에 베스파시안이 로마의 황제가 됨으로 플라비안왕조가 시작이 되며 베스파시안은 그의 아들 타이투스를 사령관으로 임명하고 타이투스는 알렉산드리아에서 예루살렘으로 진격해 들어간다. 그리고 유월절 직전에 예루살렘을 포위한다. 매일드리는 제사는 7월 13일에 폐하여지고(하나님은 이미 오래전에 그리스도께서 한온전한 제물로 자기를 드리실 때에 제사를 폐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성전은 포위된지 다섯달 십일만인 8월 4,5일에 불에 타서 완전 소실이 된다. 그리고 이전쟁으로 110만명이 죽고 97,000명이 사로잡혀 감으로 끝이 난다.
이와같은 사실들을 예언한 말씀이 이말씀이다.
“그의 종말은 홍수에 엄몰됨 같을 것이며”
여기서 ‘그’는 로마제국을 말한다.
로마제국의 쇠망을 예언한 말씀이다.
게르만민족이 침입하여 들어오기를 홍수가 횝쓸어 가듯이 로마제국의 영광이 그렇게 엄몰된다.
AD 476년 8월 22일 오도아켈이 로마제국의 마지막황제인 아우구스툴루스 로물루스 황제(어린 로물루스라는 별명을 가짐)를 폐위 시킴으로 A.U.C. 곧 BC 753년부터 시작된 로마제국이 1260년의 영욕을 뒤로 하고 역사에서 사라지는 것을 홍수에 엄몰됨같이 망할 것을 말한 것이다.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
로마는 제국을 지키기 위해 항상 전쟁을 수행해야 했고 어느제국보다도 많은 전쟁에 휘말리고 하나님의 아들을 죽인 보응으로 몇사람을 제외한 거의 모든 황제가 암살과 독살을 당한 비운의 국가로 남이 있는 것이다. 이것이 끝까지 전쟁이 그치지 않고 결국에는 황폐될 것을 말한 것이다.
< 그다음은 마지막으로 27절을 보자 >
이구절의 오해가 모든 신학적인 혼란을 가져온 것을 아는 것은 참으로 경악스러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많은 사람들이 이구절에 눈이 어두워 진리를 분변하지 못하고 혼란가운데 스스로 들어가서 다니엘과 같이 깨닫는 은혜를 받지 못하고 허송세월을 한 것이다.
(단 9:27)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잔포하여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케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여기서의 ‘그’를 26절에서 로마제국을 가리키는 ‘그’와 혼동을 하는 것이 문제이다.
그리고 또한 많은 사람들이 그로 인하여의 ‘그’를 적그리스도로 오인을 하여 오역을 하고 거기에 바탕을 두고 나온 마귀의 속임수인 과거주의와 미래주의에 속아서 많은 오류를 가져오고 교회안에 혼란을 초래한 것이다.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여기서 ‘그’는 그리스도를 말한다.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는 많은 민족 곧 많은 종족들을 말한다. 그것은 이세상 모든 이방들을 포함한 세상 모든 종족들을 말한다.
하나님의 구속의 언약은 이스라엘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모든 아담의 후손들을 위한 언약이 둘째 아담인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의 언약이다.
(사 49:6) 그가 가라사대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오히려 경한 일이라 내가 또 너로 이방의 빛을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행 13:47) 주께서 이같이 우리를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을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호 1:10)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같이 되어서 측량할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을 것이며 전에 저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저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사신 하나님의 자녀라 할 것이라
그러므로 이언약은 모든 민족을 구원하시는 메시야의 언약이다.
“한이레동안”은 칠십이레중 마지막 이레를 말한다.
동안이라는 말은 King James 번역의 “in the midst of the Week” 곧 한이레중간이라는 말이며 한이레 중간은 삼년반이 지난때를 정확히 지적하고 있는 말이다. Knox 번역에서는 “before another week is done”라고 번역을 하고 있는데 그것은 마지막 한이레가 다하기전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는 AD 29년에 그리스도가 죽임을 당하심으로 하나님의 구속의 언약을 성취하는 사건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라는 말은 굳게 정한다는 말을 영어의 conform 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단어는 약속을 확정하는 뜻으로 사용되는 말이다. Knox 는 이부분을 “High Covenant he shall make” 곧 언약을 이루고 성취한다는 말로 번역을 하고 있다.
이모든 증거를 종합적으로 볼 때에 이말씀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의 사건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구절에서의 ‘그’를 적그리스도로 보기 때문에 예수회신부가 파놓은 미래주의의 함정에 빠져서 허덕이고 있으며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적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어처구니 없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으며 두려움으로 그날을 기다리는 전혀 얼투당투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그이레의 절반은 삼년반만인 29년을 말한다.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라는 말은 제사가 끝나고 예물이 끝난다는 말이다. 제사가 끝나고 예물이 끝나는 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다.
“he shall cause the sacrifice and the oblation to cease”-KJV
이는 “그로 인하여 곧 그리스도로 인하여 제사와 예물이 끝날것이요” 라는 뜻이다.
(히 9:11)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히 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그가 온전한 제사를 드림으로 죄인을 향하여 매일진노하시는 하나님을 만족하게 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아버지가 만족하셨기 때문에 그도 만족해 하신 것이 죄인들의 죄를 담당하신 것이다.
(사 53:10)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사 53:11) 가라사대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
그러므로 다시는 죄를 사하기 위해 드리는 제사가 이땅에서는 없는 것이다.
(히 10:18)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
이구절을 가지고 오해를 하기 때문에 어떤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를 시리아왕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라고 지칭하며 그가 BC 168년부터 164년까지 삼년반동안 매일드리는 제사를 폐하였던 사건과 일치를 시키는 우를 범하여 교회를 어지럽히기를 수세기동안 행하여 왔다. 그러나 그것은 앞뒤 문맥으로도 안맞는 말이고 역사적으로도 안맞는 말이다.
그런가하면 어떤이들 곧 미래주의에 속한 사람들은 69이레는 이미 지나갔지만 지금가지는 공백기이고 한이레가 아직 남아 있어서 마지막 칠년대환란(성경에도 없는 것을 예수회 신부인 리베라가 만들어 낸 것) 에 적그리스도라가 나타나서 잔포를 행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는 참으로 문맥조차도 신중하게 보지 못하는 경솔하고도 황당한 주장이다.
이로부터 이스라엘의 회복이 있을 것이라는 유대인들의 허탄한 신화가 나온 것이다.
이로부터 예루살렘 제 3성전이 지어질것이라는 허황된 사람의 말들이 나온 것이다.
신구약 성경 어디를 봐도 그리고 지난 이천년동안을 봐도 하나님은 BC 457년에 스룹바벨의 성전을 재건하라고 명하신 후에 성전건축을 예언하신적도 없고 명하신적도 없다. 그리고 AD 70년에 예루살렘을 황폐화시키고 예루살렘 성전을 훼파하신 분이 하나님 자신이시다. 하나님이 그의 분과 노를 거기에 쏟아 부으신 것이다. 주님도 예루살렘의 패망을 미리 예언하셨다.
(눅 21:20)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눅 21:21)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지며 촌에 있는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지어다
(눅 21:22) 이 날들은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는 형벌의 날이니라
(눅 21:23)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 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니 이는 땅에 큰 환난과 이 백성에게 진노가 있겠음이로다
(눅 21:24) 저희가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
그리고 AD 117년에 로마의 하드리안황제가 예루살렘을 방문하고 예루살렘 성전을 지을 것을 명하나 하나님은 그의 마음을 바꾸어 중도에 그것을 제우스신전으로 봉헌하게 하였다. 그것은 하나님이 막으신 것이다.
그의 아들의 온전한 제사를 부인하는 어떤 것도 하나님은 허락하실 수가 없기 때문이다.
다시는 이땅에 죄를 속하기 위한 피의 제사가 다시는 필요 없고 제사를 드리는 성전도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중에는 이슬람의 모스크를 그 자리에 짓도록 했다.
AD 638년 무슬림이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수세기간에 걸쳐 지은 것이 오늘의 예루살렘성전터에 있는 이슬람 모스크인 Haram Ash-Sharif 황금돔이다.
그것까지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일임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예루살렘성전을 다시 지으려는 어리석은 시도를 막으셔야 했기 때문이다.
1967년이전에는 예루살렘을 이스라엘과 요르단이 양분하고 있었으나 동년 6월 5일에 발발한 6일전쟁 곧 제 3차 중동전쟁을 통해 동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땅이 되었으나 그곳에 있는 황금돔만큼은 아직도 팔레스타인 경찰이 관리하며 2000년 9월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가 평화협정을 위하여 그곳을 일시 방문하였다가 인티파타라는 팔레스타인 민중봉기가 일어나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어리석은자들은 성지순례를가서 모스크를 향하여 무너지라고 기도를 한다고 하니 단지 깨달음이 없어서 그러는지 아니면 그들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인가 의아할뿐이다.
이제는 옛 예루살렘 성전보다 나은 성전이 성령을 모시고 사는 성도들의 몸이기 때문이며 이제는 더 이상 예루살렘 성전도 필요 없고 제사도 필요가 없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자기 몸을 드리심으로 한 온전한 제사를 드리심으로 온 인류의 죄를 단번에 사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님은 유대인들에게 이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만에 세우리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다시는 이땅에 성전이 필요 없는 것이다.
다시는 이땅에 제사가 필요 없는 것이다.
분명히 알라
이땅의 성전의 회복을 말하는 자는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적그리스도의 영이다.
이땅의 제사의회복을 말하는자도 그리스도의 온전한 제사를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의 영이다.
(요일 2:22)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뇨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뇨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깨닫는 자가 되라
그러므로 땅의 예루살렘의 회복은 없다.
그러므로 땅의 예루살렘 성전의 회복도 없다.
땅의 이스라엘의 회복도 없는 것이다.
교회는 한 온전한 제사를 드리심으로 우리의 죄를 사하심을 믿어 구원받은 성도들의 공동체가 교회이다.
교회는 구약의 이스라엘을 전승한다.
그들의 언약과 율법과 제사를 전승하는 새롭고 참된 이스라엘이다.
이런 우를 범하는 이유가 이말씀의 본문에 주의하지 않는 부주의함 때문이다.
“또 잔포하여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이말씀에서 하나님은 예루살렘의 멸망을 미리 알게 하신다.
어떤 경솔한 이들의 말과 같이 잔포하여 미운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것이며라는 말은 적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문맥으로 볼 때나 역사적으로 볼 때에 이것은 로마를 상징하는 말이다. 그것은 예루살렘을 정복한 정복자들의 깃발을 말한다.
로마의 휘장은 독수리가 날개를 펴는 모양을 그려 넣은 것이다.
그것이 다름아닌 잔포하여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선다는 말로 표현 된 것이다.
이것이 다름아닌 온백성들이 미워하는 것이 날개를 의지하여 서게된 AD 70년이 예루살렘의 패망을 예언하는 말씀이다.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케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이말씀은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잔포를 행한 로마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말하는 것이다. 26절에서 미리 말씀하신것과 같은 말씀 곧 로마의 멸망을 다시 반복하시는 것인데 ‘그의 종말은 홍수에 엄몰됨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라는 말을 다시 확약하는 말이다. 로마의 종국의 날까지 하나님의 진노가 그나라를 떠나지 않고 끝까지 황폐하고 망하는 날까지 쏟아질 것을 예언하시는 말씀이다.
앞에서도 언급한 것과 같이 로마의 황제들 중에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암살을 당하고 독살을 당하였으며 전쟁과 기근과 역병이 끊일 날이 없었던 역사상 내부적으로나 외적으로 가장 처참한 제국이 로마이었다.
이렇게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에 신중하지 못하고 경솔하고 경박한 마음으로 본문조차도 집중하지 않은 결과가 오늘날 요한계시록에 대한 많은 오류를 낳게 된 것이다. 천년설의 난무도 여기서부터 시작이 되었으며 모든 이단들 곧 여호와의 증인이나 몰몬교나 안식교등이 이땅의 예루살렘이나 천국의 회복을 꿈꾸는 여러 가지 천년설로부터 기인한 것을 아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수가 없다.
이제는 이와같은 어두움으로부터 빠져 나오는 일만이 남은 것이다.
주님의 몸된 교회가 더 이상 마귀에게 기회를 주어서는 아니된다.
하나님의 말씀에 신중하고 진중한 접근을 하고 요한과 같이 본것과 들은 것만을 말하고 다니엘과 같이 하나님의 성령이 깨닫게 하신 것만을 말하는 진실한 사람이 되자.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은 아무에게나 주시는 것이 아니다.
이사실에 우리는 두려워 해야 한다.
예전에도 다니엘에게 주신 말씀이다. 그시대에 아무에게도 주시지 않은 말씀이다.
이천년전에도 요한에게만 주신 말씀이다. 아무에게나 주신 말씀이 아니다.
다니엘에게는 무엇이라 말씀하셨는가?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단 9:25전)
깨달아 아는 은혜를 받아야만 이말씀을 전하고 가르칠수 있는 것이다.
말씀을 깨닫는 은혜를 주님은 누구에게 주시는가?
누구에게 장차 곧 될일을 계시하시는가?
요한은 이말씀을 받을 때에 자기를 가리켜 무엇이라 말하였는가?
(계 1:9)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① 성도들에게 참형제가 되는 사람에게 주님은 그의 말씀을 계시하신다.
교회는 다녀도 때로는 목사요 장로라도 누구에게 자신을 형제라고 말못하는 이들이 많이 있으며 어느 누군가가 자기를 형제라고 불러주고 대해줄수 없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요한은 전세계에 흩어진 성도들에게 자기를 형제라고 부를수 있었고 형제라고 불리울수 있는 주님의 몸된 교회안의 유기적인 영적교제가 있는 사람이었다.
② 예수의 환난과 참음에 동참하는 사람에게 그의 말씀을 계시하신다.
예수의 환난과 참음에 동참하는자는 예수의 이름으로 핍박을 받는 하나님나라의 백성을 말한다.
지금 이글을 일고 있는 당신은 예수 때문에 핍박을 받고 불이익을 당한 적이 있는가? 그리고 그 핍박가운데 살고 있는가? 무릇 경건하게 살고자하는자는 핍박을 받는다고 말씀하셨다.
③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사는사람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사는 하나님나라의 생활을 사는 사람이다.
세상사람과 구별된 경건한 생활을 사는 사람이다.
④ 예수의 증거 곧 전도하여 영혼을 건지는 사람
예수의 증거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는 것 곧 복음전도를 말하는 것이다. 단지 교회나오라는 교인하나 얻기 위한 바리새인의 전도와는 구별되는 것이다. 영혼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전도를 말한다.
이와같이 그리스도인들간에 형제의 교제가 있으며 예수로 말미암아 핍박을 받고 하나님나라의 생활을 살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전도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앞으로 일어날 일을 계시하시고 보여주시는 은혜를 주시지만(그것은 주님이 일방적으로 베푸시는 은혜이다) 그렇지 않으면 요한이 받아 교회에 전한 이말씀을 스스로 억지로 풀다가 멸망에 이르는 일을 자초하는 비운에 빠지는 것이다. 다니엘도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것만을 말하고 깨닫게 하시는 것만 말했지 스스로 말하거나 억지로 풀어서 말한 것은 단하나라도 없었으며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서 들은 말이나 배운 말을 가지고 말하지 않았음을 기억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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